中国文革中遭遇迫害自杀的女演员
1966-1976的文化大革命又称“无产阶级文化大革命”,其主要目的是确立工农为代表的无产阶级政权及其所体现文化的统治、指导、支配地位。在被江青的人利用以后,逐渐转化为一场旷世罕见的政治文化灾难。在文革十年之中,有无数政治家、学者、知识分子等受到无辜迫害死亡。特别演员们被冠以“社会毒瘤”恶名,在经受常人难以承受的肉体、精神摧残以后,一些人不得不选择走上绝路结束痛苦。最近,登载在中国新浪网络上的一组中国文革期间自杀女演员的照片带领人们从新走进那段激情、痛苦、难忘历史场面。
上官云珠(1920年3月2日-1968年11月23日),江苏江阴长泾镇人,女,名均荦,字超群,小名亚弟,又名韦亚君。中国著名电影表演艺术家,中国影协会员,上海影协常务理事,上海市政协第一、二届委员和第三、四届常务委员。1968年跳楼自杀。
言慧珠。1919年生,北京人,蒙族。著名京、昆剧表演艺术家。言菊朋之女,梅兰芳之徒、俞振飞之妻。解放后曾任上海市戏曲学校副校长,擅演《玉堂春》、《游园惊梦》等。“文革”中惨遭批斗、殴打,肉体和精神均受到巨大伤害。1966年9月11日晚,接连写下三封绝命书后自杀身亡。
赵慧深。1911年生,四川宜宾人,著名表演艺术家,以在舞台剧《雷雨》中成功饰演繁漪闻名。“文革”中,因电影剧本《不怕鬼的故事》家庭成份不好而被打成“三反分子”,屡遭批斗;又因曾在《马路天使》中饰演过妓女小云而受到造反派的肆意嘲弄和侮辱,于1967年12月4日含恨自杀。
严凤英。1931年生,安徽桐城人。著名表演艺术家,以主演黄梅戏《天仙配》闻名。文革中被指为“文艺黑线人物”、“宣传封资修的美女蛇”,并被诬蔑为国民党潜伏特务,屡遭批斗。1968年4月7日夜自杀身亡。死后,当时的军代表出于不可告人的卑劣目的,为看其裸体硬说其肚内藏有特务联络的发报机。在对严凤英的尸体脱光衣裤后还对其开膛破肚。
顾圣婴:1937年生,江苏无锡人。著名女钢琴家,1958年参加日内瓦第十四届国际音乐比赛,获女子钢琴赛最高奖。1960年参加华沙第六届肖邦钢琴赛获很高评价。同年获中央音乐学院荣誉毕业证书。后连续多年被评为上海市优秀青年和三八红旗手、文化局优秀团员。1964年参加比利时国际钢琴赛再次获大奖。1967年1月31日与母亲、弟弟开煤气全家自杀。
李翠贞(1910—1966年)上海郊区南汇县人。在文革中遭受了极大的污辱,红卫兵强迫她趴在地上爬过桌椅,还用墨水涂黑她的脸。对于视人格与尊严高于生命的李翠贞来说,这种污辱比死亡更不能忍受。这位高贵的女士不堪屈辱,毅然选择了高雅的方式来结束自己的生命。于是她穿上最漂亮的衣服,并且精心的化了妆,然后才拧开煤气…
陈琏:1919年生,浙江慈溪县人,系蒋介石高级幕僚有”文胆”之称的陈布雷之女。1939年入党,解放後曾任林业部教育司副司长、全国妇联执行委员。”文革”开始后。造反派诬蔑她是叛徒、特务,并扬言要开除她的党籍。1967年11月19日,48岁的陈琏从十一层楼上跳楼身死。
小白玉霜 :原名李再雯,小名福子,祖籍山东,5岁随父亲从天津逃荒到北京,父母亲养不起她,就把她卖给了著名评剧演员、白派创始人白玉霜做养女,杰出的评剧表演艺术家。白派传人,是20世纪50、60年代的评剧泰斗和领头羊。一九五零年全国第一次政协会议上受到毛泽东主席亲切接见。由于“四人帮”的迫害, 毒打后吞食安眠药自杀时才45岁(时间不明)。
中 문화대혁명, 자살한 여배우들 누구?
1966~1976년 지속된 중국 문화대혁명은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라고도 부른다. 공인(工人), 농민 등 노동자 무산계급의 대표 문화가 정치지배적 지위 취득을 목적으로 문화계에서 발생했다. 10년간 수많은 정치인, 학자, 지식인들이 피해를 입고 죽었다. 특히 연예인과 같은 예술인은 ‘사회의 독’이라는 오명을 입어 많은 정치적 비판을 받고 숙청을 당했으며, 일반인들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고문을 당했다.
최근 중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 기간 동안 비판과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중국 여배우들이다. 그 중 가장 유명했던 비운의 예술인 8명을 소개한다.
상관위인주(上官云珠, 1920~1968)
중국의 저명한 영화 연출가이자 상하이영화협회 상임이사였고, 상하이정부 정치협상위원회 2, 3, 4기 상무위원이었다. 홍위병에게 정신적인 고문을 받고 1968년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얀후이주(言慧珠, 1919~1966)
베이징 출신 몽골족으로 유명한 경극과 촌극 연출가이자, 메란팡(梅兰芳)의 후임자였다. 상하이 전통극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경극 <위탕추언(玉堂春)>, <유위안징몽(游园惊梦)> 등을 연출했다. 남편인 위전페이(俞振飞) 역시 중국의 유명한 경극 연출가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고문을 당하고 정신과 신체에 큰 상처를 입은 뒤 1966년 9월 11일 저녁에 유서 3장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조후이진(赵慧深, 1911~1967)
중국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난 유명한 공연 예술가였다. 연극 <낙뢰(雷雨)>, <거리의 천사(马路天使)> 등을 성공적으로 연출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게 조롱과 모욕을 받아 1967년 12월 4일에 생을 마감했다.
얀펑잉(严凤英, 1931~1968)
안휘(安徽)성 퉁청(桐城)시에서 태어났다. 오페라 <칠선녀(七仙女)>를 연출했다. 또한 오페라 가수와 공연가로도 유명하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흑심 문예자(文艺黑线人物)’, ‘자본주의의 스파이’ 등의 오명을 입었고, 1968년 4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시체까지 당시 군대표에게 비인간적 유린을 당했다.
구승영(顾圣婴, 1937~1964)
중국 장쑤(江苏)성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1958년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여성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1964년 벨기에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도 수상했다. 상하이우수청년상을 받았으며 상하이문화국에서 우수공산주의청년단원으로 선정됐다. 1967년 1월31일 어머니와 동생 등 일가족이 가스를 피워 자살했다.
리추이젠(李翠贞, 1910~1966)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에 홍위병들은 그녀가 테이블과 의자 아래로 기어가게 하고 폭행하는가 하면 검은 잉크를 얼굴에 뿌리는 등 모욕적인 고문을 행했다. 그녀는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고 죽음을 택했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스밸브를 켜놓은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첸 리안(陈琏, 1919~1967)
그녀의 아버지는 장개석 국민당 총사령관 휘하의 고급 장교였다. 그녀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 후 공산당 교육국 부국장, 중국 여성연맹 집행위원을 맡았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홍위병의 비방을 받아 1967년 11월19일, 11층 건물에서 뛰어 내려 죽었다.
샤오배위쐉(小白玉霜, 1922~1967)
산둥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때문에 샤오배위쐉을 배위쐉(白玉霜)이라는 유명한 핑극(评剧) 연출가에게 팔았다. 나중에 중국의 유명한 평극(评剧) 연출가가 됐고, 1950~1960년대 중국 ‘평극 연극계의 태두’라고 불렸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폭행을 당했으며, 수면제를 먹고 목숨을 끊었다.
번역=김미래 인턴
교정=왕수엔 기자 news@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