韩国,从1997到2012

 “活力韩国”一直是韩国政府制定的国家发展口号。就像这句口号所说的一样韩国正在向我们展示着向这一方向所发展的变化。

我本人作为驻外记者来到韩国已经是第三次了,同15年以前相比,切实地感觉到,作为一个外国人,我在韩国的生活越来越方便了。

第一个理由,要数饮食。在15年以前,在韩国除了具有代表性的韩国料理以外,几乎找不到其他的饭店。虽然也有标着“日本料理”标牌的日式馆子,但是进去以后才发现,还是依据韩国方式做的,日本人便将这种所谓的“日本料理”视为了韩国料理的一种。如今,这些已经成为了历史,在首尔市内随处可见标有日文“小酒馆”的饭店,随便在什么地方都可以品尝到毛豆、鱼生等日式食品。不仅如此,现在你还完全可以在首尔就品尝正宗地道的意大利、法国等其他国家的美食。

第二个理由就是,韩国的服务行业变得越来越好。从前在韩国上坐计程车,对外国人来说需要无比的勇气。开计程车的大叔们,要么是一言不发,要么就是一看到是日本人,便表现出一种难以控制的不快。 因此,对于很多外国人国人来说,他们宁可多花一点钱,也还是要坚持选择有模范标志的车来乘坐。如今,从前那些带有模范字样的出租已经减少到了原来的1/3,。我想其中的主要原因大概是因为,对于那些没标有“模范”字样的计程车,他们的服务比起模范们来说也丝毫不加逊色的缘故吧。不仅是计程车业界,就是在百货商店、餐馆等地方,对客人的态度与日本几乎不失之分离,让我找到宾至如归的感觉。

第三点,对于其他的外国人来说可能感觉不是十分明显,就是在韩国的反日情绪正在一点点减弱。从前,在韩国的计程车和地铁里用日文谈话是一种禁忌,这主要是由于害怕遭到周围的人投来敌视的目光。甚至,在夜晚同好朋友们在街边小吃摊上品尝美味时,也数次遭遇过投掷而来的酒瓶。然而,现在的韩国发生了巨大的变化。现在每年平均有300万名以上的日本人到韩国来观光访问。在明洞,到处都可以看到为了方便日本朋友而提供的日文标牌和说明。

对于外国人来说,在韩国的生活是越来越好了,那么对于居住在韩国的本国人来说,情况又是怎样呢?韩国在上个世纪末期成为金融危机的中心,社会各方面发生了很大的变化。当时很多大企业不得不面临破产,在面临生存危机的情况下,又不得不进行企业结构改革。一些被辞退的员工因无法得到退职津贴而对社会不满,由此而产生了各种批评之声,社会陷入了一片混乱之中。

而韩国在这种十分不利的情况下迈出了向竞争社会发展的重要一步。为了技压群雄能够在三星、现代等大企业就业,为了获得来自周边的认可和肯定,必须选择例如首尔大学、高丽大学等名校就业。为了能够够顺利进入这些学校,韩国人养成了从幼儿园开始到高中结束一直保持挑灯夜读的优良习惯。

因此,让我深深的感觉到,日本用了50年才实现的巨大成就,今天在韩国用了不过短短的20年便实现了。在未来的韩国又会发生什么样的巨大变化呢?拭目以待。(王璇译)

한국 1997, 한국2012

‘다이내믹 코리아’. 한국 정부가 만든 국가 슬로건이다. 그만큼 한국은 다이내믹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의 서울 주재원 경험은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확실히 지난 15년 전에 비해 외국인으로서 더욱 더 살기 쉬워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식사다. 예전에 한국에는 한국요리 이외의 식당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히 ‘일식’이라 불리는 일본 요리집은 있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한국식’ 일본요리로 일본인의 눈으로 보면 한국요리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했던 것이 지금은 시내 곳곳에 ‘선술집(이자카야)’이 있고 풋콩, 생선회에 닭꼬치구이 등 모든 일본메뉴가 갖추어져 있다. 일본음식 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요리도 본고장다운 맛을 서울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서비스가 좋아진 것이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택시를 탄다는 것은 외국인에게 조금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운전이 거친데다 대부분의 운전기사는 무뚝뚝하고 이쪽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면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때문에 외국인은 요금이 조금 비싸더라도 운전기사가 친절한 모범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이 ‘모범’ 택시의 대수가 가장 많았을 때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택시의 서비스가 향상되고 ‘모범’과 비교하도 손색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택시 뿐만이 아니다. 백화점이나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대하는 서비스는 이미 일본과 겨루어도 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세 번째는 외국인이라기 보다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반일감정이 엷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택시, 지하철이나 버스 등 공공교통기관 안에서는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상 터부(taboo)였다. 왜냐하면 주변사람들이 일제히 일본어로 말하는 우리를 째려보았기 때문이다. 야밤 포장마차에서 친구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소주 병이 날아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간 300만명 이상의 일본인이 관광으로 방문해 번화가인 명동에는 일본어가 넘치고 있다.

외국인에게는 살기 좋아진 한국이지만, 정작 한국인에 있어서는 어떠할까? 한국은 1990년대 말에 직면한 아시아 통화위기를 기점으로 사회가 크게 변했다. 당시 대기업의 도산이 잇따르고 회사는 생존의 갈림길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퇴직금을 받지 못한 채 해고된 직장인이 속출했고 여기저기서 노사분쟁이 일어나는 등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은 지극히 혹독한 경쟁사회로 다시 태어났다.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일류기업에 취직하는 것 등 주변으로부터 성공했다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우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와 같은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유치원부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중학생이 되면 밤늦도록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이 50년에 걸쳐 쌓아 온 발전을 한국은 불과 20년만에 달성했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과연 한국이 어떻게 바뀌어 나갈 것인가? 코리안 워쳐(watcher)로서 계속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