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鲜曾意图控制库页岛韩人,遭遇失败
过去,在苏联境内,曾经存在着世界第四大海外韩人社会。到1991年,苏联崩溃解体时为止,在当地仍然居住有45万余名体内留着韩国血液的在苏韩人(在韩国被称为高丽人)。苏联崩溃以后,他们开始逐渐地分散到俄罗斯、卡萨克斯坦、乌兹别克斯坦等地。除此以外,还有一部分迁移到了遥远的库页岛上生存。
1945年8月,当时的苏联完全地控制了库页岛地区。而当时的在苏韩人,虽然十分希望能够回到祖国,但是却始终无法获得政府批准。他们被苏联同化,却始终无法成为真正的苏联公民。他们在不知不觉之中被剥夺了返回故乡的机会。直到1970年,这些人仍然还是属于没有国籍的居民。
到了上个世纪50年代后期,朝鲜率先开始设法接近居住在库页岛的韩人。朝鲜向所有无法获得苏联公民资格的在外韩人提出建议,希望他们能够回到朝鲜。
同时,朝鲜还接近日本韩人社会,成立了名为“朝总联”的组织(在日朝鲜人总联合会)。朝鲜虽然在库页岛地区也试图采取类似措施,但是后来发现,这并不是一件容易的事。
1976年,苏联政府开始允许库页岛地区的韩人前往日本,但是没过多久便又矢口否认。一部分库页岛韩人设法回到了朝鲜,但是不久就遭遇到了政治“清洗”,库页岛居民归还运动也以失败告终。
进入上个世纪90年代以后,库页岛韩人才开始可以不受朝鲜干预,在韩国、日本、俄罗斯的帮助下,得以再度回归故土。(王璇译)
북한 ‘사할린동포 통제’ 실패
옛 소련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해외거주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었다.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45만여 명의 거주자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련 붕괴 후, 이들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흩어졌다. 또 다른 부류는 멀리 떨어진 사할린이라는 섬에서 살고 있다.
1945년 8월, 소련은 남부 사할린을 완전히 통제했다. 한국인들도 고향으로 가고 싶어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이들은 소련에 귀화했지만 소련 국민이 되지도 못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박탈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1970년대까지 국적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1950년대 후반, 북한은 사할린 동포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소련 국민이 아닌 모든 한국인들에게 북한에 올 것을 제안했다.
북한은 일본의 한인 커뮤니티를 끌어들여 조총련 설립을 만들도록 했다. 북한은 사할린에도 이런 방법을 적용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1976년 소련은 사할린 동포들이 일본으로 갈 수 있도록 허락했지만 곧 번복됐다. 이들 중 북한으로 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무자비하게 처리됐고,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운동은 실패했다.
1990년대 들어 사할린동포들은 남한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는 북한과는 상관없이 남한과 일본, 러시아의 도움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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